빈(비엔나)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1755-1793)



마리 앙투아네트 (1755-1793)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결혼 전의 이름은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이며, 결혼한 후의 이름은 마리 앙투아네트 조제프 잔 도트리슈로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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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Antoinette (1755-1793)

Marie Antoinette was the last Queen of France before the French Revolution. She was born an Archduchess of Austria, and was the penultimate child and youngest daughter of Empress Maria Theresa and Francis I, Holy Roman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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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ie Antoinette's Execution (1793.10.16) /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

1793년 8월 마리 앙투아네트는 콩세르쥬리 감옥으로 이감된 뒤, 10월 초에 공개 재판을 받았지만 결과는 처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민족주의에 깊이 물든 혁명기의 민중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오스트리아 여자였고 반역자였다. 1793년 10월 15일, 그녀는 혁명 재판으로부터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다음날인 10월 16일, 콩코드 광장에서 남편의 뒤를 따라 단두대에 의해 참수당했다. 참수형 당일, 마리 앙투아네트는 특별 죄수로서 거름통을 싣는 짐수레에 실려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콩세르쥬리 감옥에서 나올 때 그녀는 머리카락이 짧게 깎여져 있었으며 두 손은 뒤로 묶여져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답게 품위를 중시했던 그녀는 반혁명의 혐의로 3일 간 받은 심문 내내 의연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였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혁명 직전, 마리 앙투아네트는 편지글에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남겼고, 사형장에서 사형 집행인의 발을 실수로 밟아버렸을 때에도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라며 에티켓을 지킨 마지막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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