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정발
鄭撥 (1553-1592)



정발 (鄭撥, 1553-1592)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 고 얼마 뒤에 종성에 가서 북노를 쳐서 평정한 공을 세웠으며 그 후 거제현령, 위원군수, 훈련부정을 지내고 임진대란을 앞두고 부산진첨사로 부임하였다. 부임 당시 부산성은 민가 가 28호고 병선이 3척 뿐이었으나 성을 수축하여 병졸을 모아 훈련하였다. 그러나 1592년 선조 25년 4월 30일 아침 왜구 소서행장을 선봉으로 십만대병을 거느린 수백 척의 적함과 맞서 싸우다가 부산성과 함께 장렬히 순국하였다.

출처 : 부산 동구





ⓢ Jeonggongdan / 정공단(鄭公壇)



정공단(鄭公壇)

정공단은 1766년(영조42) 부산첨사 이광국이 임진왜란때 부산첨사 충장공 정발 장군이 순절한 부산진성의 남문 바깥에 설치한 단으로, 정발장군을 비롯한 순국선열의 넋을 모신 곳이다. 정공단에는 [충장공정발장군비]가 세워져 있고 뒤쪽에 [증좌승지이공정헌비], 향 우측에[열녀 애향비], 좌측에 여러 군민을 모신 [전망제공비], 단 밑에 충직한 노비[충복 용월비]가 세워져 있다. 정공단이 건립된 이후부터 매년 음력 4월14일에 역대 부산첨사가 제향을 봉행해 왔으나, 1895년 첨절제사 제도가 폐지된 후에는 지역주민들이 향사계를 올려 왔다. 지금은 (사)정공단보조회에서 매년 정성을 다해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2010년 고증 을 거쳐 단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출처 : 부산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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