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잠두봉



절두산 순교성지

예로부터 이곳은 한강변에 자리한 나루터로 버들꽃 나루라는 뜻의 양화진(楊花津)이라 불리었으며, 우뚝 솟은 봉우리는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도 불렸다. 1866년 조정으로부터 천주교 박해령(병인박해)이 내려지면서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국내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9명을 포함하여 1866년부터 1868년까지 전국적으로 약 8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였다. 당시 자국 선교사의 처형 소식을 들은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무력으로 진출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통상을 요구하는 병인양요를 일으키자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서양인의 침입으로 더럽혀진 영토를 천주교인들의 피로써 씻겠다는 흥선대원군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 함대를 불러들인 혐의가 있는 신자들을 이 곳 양화진에서 처형하였다. 이때부터 이곳을 천주교인들의 머리가 잘려 죽은 곳이라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절두산의 첫 순교자인 이의송(프란치스코), 김이쁜(마리아), 이붕익(베드로) 일가족을 비롯하여 약 2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 당시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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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포구

Jeoldusan Martyrs Shrine

It came into use in the late 1860s, during the rule of the Daewon-gun, as a place of execution, primarily of native Koreans who had converted to the proscribed Roman Catholic faith. The present day memorial was built in commemoration of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Byeonin Persecution in dedication of the approximate 8000 executions. In 1984, Pope John Paul II visited the site. Mother Teresa visited a year later. The memorial currently holds approximately 3000 religious re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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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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