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정몽주 (묘)
鄭夢周 墓



정몽주 묘

정몽주 묘는 경기도기념물 제1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곡로 45이다. 정몽주는 공민왕 9년(1360)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공양왕 2년(1390) 수문하시중이 되어, 이성계가 새로 나라를 세우려는 것을 막으려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개성의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이방원의 회유를 거절한 ‘단심가’라는 시조로도 유명하며, 고려의 3은(三隱-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중의 한 사람이다. 조선 태종 1년(1401) 영의정으로 높임을 받았고 중종 때에는 문묘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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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기문화재연구원


ⓟ Jeong Mongju (1337-1392) / 정몽주



정몽주 (1337-1392)

고려의 충신으로 문신·외교관이자, 정치가·교육자·유학자이다. 정몽주는 고려 말기 무신 세력의 몰락과 함께 세를 얻어가던 신진 사대부 세력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고려에 새로 도입된 성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학자 관료들의 지도자로서 높은 학식으로도 존경을 얻고 있었다. 무력을 바탕으로 부패한 고려 조정을 뒤엎으려 한 이성계와 손잡고 고려 말 정치를 좌지우지하였으나 고려 사회의 체제를 지키려 한 정몽주와 역성혁명을 도모하던 이성계는 궁극적인 목표가 서로 달라 결국은 사이가 틀어졌고 그것이 곧 정몽주의 처형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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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Jeong Mongju (1337-1392)

Jeong Mong-ju was born in Yeongcheon, Gyeongsang province to a family from the Yeonil Jeong clan. At the age of 23, he took three different civil service literary examinations (gwageo) and received the highest marks possible on each of them.[2] In 1367, he became an instructor in Neo-Confucianism at the Gukjagam, then called Songgyungwan, whilst simultaneously holding a government position, and was a faithful public servant to King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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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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