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
홍경래
홍경래의 난 (1811)



홍경래의 난 (1811)

홍경래의 난은 1811년(순조 11년) 홍경래·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넓은 의미에서의 농민 반란으로 조선 후기 농민들의 저항 의식 성장과 서북 지역의 특성이 결합하면서 일어난 농민 항쟁이었다. 조선 후기는 상업의 발달과 교육 기회 증가 등에 따라 지식인 계층이 확대되고, 이를 토대로 과거에 응시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이전의 관직 체계로는 그들을 포섭할 수 없어서 불만 세력은 갈수록 늘어갔다. 특히 평안도는 성리학적 기풍이 강하지 않았기에 사회 질서와 문화가 낙후되었다. 또한 군사 전략 지역이자 사신 접대 지역이라는 특수성 등으로 독자적인 재정 운영을 하면서 재정적인 부담도 가중되었기에 지역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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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Hong Gyeongnae Rebellion (1811)

Extortion of peasants by corrupt officials continued under the governance of the royal in-laws. The peasants of Pyeong-an province endured greater hardships as they were responsible for the payment of entertainment offered to Chinese envoys. On top of this, the people of Pyeong-an province were already highly discontented as they were unable to join the high-ranking government posts because of discrimination against the region that had continued from the beginning of the Joseon period. It was at this juncture that Hong Gyeong-nae, a‘ fallen’yangban of Pyeong-an province, organized a large-scale rebellion. People from diverse classes of society, including peasants, miners, handicraft artisans, merchants and temporary laborers, took part in the rebell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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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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