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김마리아
1891-1944,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김마리아 (1891-1944)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상하이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1919년 도쿄 여자학원 졸업을 앞두고 도쿄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2·8 독립 선언이 일어나자 황애덕 등과 함께 적극 참가했다. 곧이어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미리 귀국하여 황해도 지역의 운동에 관여했다가 체포, 구금되었다. 이때 고문을 당해 몸을 상한 뒤 평생 건강 문제로 고생하게 된다. 1919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풀려난 사이, 1920년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상하이로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황해도 대의원이 되었으며, 난징의 진링(金陵)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에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파크 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뉴욕에서 다시 만난 황애덕, 박인덕 등과 함께 재미 대한민국애국부인회(근화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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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Maria Kim (1891-1944)

In 1919, shortly before graduating from Tokyo Women’s Academy, Kim actively participated with others, like Hwang Aedeok,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that followed the promulgation of the February 8 Independence Declaration, a statement drafted by Korean foreign exchange students in Japan. When the March 1st Movement broke out later the same year, Kim, who had already returned to Korea, participated in anti-Japanese protest and was subsequently arrested and detained. During this period, she was subjected to torture, and she suffered health problems throughout her life as a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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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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