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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1864-1951)
서재필은 젊은 시절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와 교류하며 근대화 사상을 수용하여 1884년 갑신정변에 참여했으나 3일 만에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시민권을 얻고 의학을 공부해 한국인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조선이 혼란에 빠지자, 1896년 귀국해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그는 이 신문을 통해 자주독립, 근대 교육, 인권, 개혁정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반발로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보수파의 탄압이 심해지자 1898년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사 활동을 하면서도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을 지원하는 등 독립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해방 후 잠시 귀국하여 미군정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6.25 전쟁 발발 직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사망했다.
Soh Jaipil
He was one of the organizers of the Gapsin Coup in 1884 as well as the 1896 to 1898 civil rights movement and other suffrage movements. However, when the Gapsin Coup failed, he took refuge in the United States, where he became a medical doctor. During his time in the United States he became the first Korean to gain American citizenship.
[Learn more]Source : Wikipedia
ⓢ Seo Jaepil Memorial Hall / 서재필 기념관

서재필 기념관
서재필 선생의 생전의 위업을 기리고자 1992년 사업을 시작하여 사당건립, 송재로 개설, 독립문건립을 통해 유적지로 면모를 갖추었으며 조각공원, 유물전시관 건립, 생가등을 복원해 기념공원(보성군)을 만들었다. 특히 서재필선생 생전의 유품 800여점을 전시한 유물전시관이 개관되며 국민교육장으로서 역할도 큰 기대가 된다.
[자세히보기]출처 : 보성군청
Seo Jaepil Memorial Hall
Seo Jae-pil, born in the Ganae Village in Yongam-ri, Mundeok-myeon on January 7, 1864, learned the scenery and romance of a farming village. Since leading the Gapsin Reform in 1884 and accomplishing only for 3 days and failing, he sought asylum and became the first doctor in US as a Korean. In 1895, he returned to Korea and established the Tongnip Sinmun (Independence Newspaper), formed the independence society and led people's movements. After contributing his whole life for the independence and modernization of the home country, he died of disease in 1951 at the age 87, demoaning over the fate of Korea.
[Learn more]Source : Boseong-Gun
ⓗ Tongnip Sinmun / 독립신문

독립신문 (1896.4.7)
독립신문은 1896년 4월 7일에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민간 신문이자 한글, 영문판 신문이었다. 발간자는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의 기관지로 발간되었다. 서재필은 당시 4,400원을 발급받고 또 조선정부의 지원을 받아 4월 7일에 처음 발간했다. 서재필을 중심으로 발간했으나 그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 헨리 아펜젤러를 발행인으로 하여 윤치호가 맡아 발행하다가 독립협회의 해산과 함께 폐간되었다. 독립신문은 최초의 순한글체 신문이자 한국 최초의 영자신문이었으며,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칼럼을 투고할 수 있었다. 1957년 4월 7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독립신문 창립일을 신문의 날로 지정하였다.
[자세히보기]출처 : Wikipedia
Tongnip Sinmun
The Independent or Tongnip Sinmun was an early Korean newspaper. Tongnip Sinmun was the first privately managed modern daily newspaper in Korea. It was founded in July 1896 by a member of the enlightened Korean intelligentsia, Seo Jae-pil. It constituted two different language editions: Korean and English.
[Learn more]Source : Wikipedia
ⓗ Gapsin Coup / 갑신정변

갑신정변 (1884.12.4)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의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정치적 쿠데타 사건이다.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지원을 받아 우정총국 낙성식을 기회로 온건 개화파 및 민씨 정권의 수구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급진 개화파는 입헌 군주제 수립을 목표로 청과의 종속 관계 청산, 문벌 폐지,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재정의 호조 일원화 등 14개조 정강을 발표하며 개혁을 추진했지만, 정변 발생 3일 만에 청나라 군대의 개입과 조선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김옥균 등 주도자들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많은 개화파 인사들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결국 일본은 한성 조약을 통해 조선에게 배상금을 받고 청나라와는 톈진 조약을 맺어 양국 군대의 철수와 파병 시 상호 통보를 규정하여 조선에 대한 청나라와 일본의 세력 경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갑신정변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조선이 자주적 근대화를 시도한 최초의 정치 혁명으로 평가되며 이후 개혁운동과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Gapsin Coup
The Gapsin Coup, also known as the Gapsin Revolution, was a failed three-day coup d'état that occurred in Korea during 1884. Korean reformers sought to initiate rapid changes within the country, including eliminating social distinctions by abolishing the legal privileges of the yangban class.
[Learn more]Source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