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Imo Incident
壬午軍亂 (1882)
Share

Share X




임오군란 (壬午軍亂,1882)

임오군란은 조선 고종 때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무장 반란으로, 근대적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다. 당시 조선 정부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는데, 이로 인해 기존의 구식 군인들은 차별을 받게 되었고, 몇 달 동안 급료와 식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불만이 극도로 쌓였다. 1882년 7월, 군인들이 지급된 쌀에서 썩은 겨가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폭동을 일으켰고, 이들이 다른 백성들과 함께 한성(서울)으로 몰려들면서 사건은 대규모 소요로 번졌다. 반란군은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 거류민을 공격하고, 민씨 일가의 집을 불태웠으며,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민씨 세력과 일본 세력을 배척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피신했고, 사태는 결국 청나라의 군대가 개입하면서 진압되었다. 청은 이를 계기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고, 일본은 자국 피해를 구실로 제물포조약(1882)을 체결하여 조선 내 주둔과 배상금을 요구했다. 임오군란은 근대 개혁이 외세의 힘에 의존한 채 추진되면서 사회 내부의 불균형과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고, 이후 조선이 청과 일본 사이에서 더욱 복잡한 외교적 예속 관계로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Imo Incident (1882)

The Imo Incident also sometimes known as the Imo Mutiny, Soldier's riot or Jingo-gunran in Japan, was a violent uprising and riot in Seoul beginning on July 23, 1882 by soldiers of the Korean army who were later joined by disaffected members of the wider Korean population. The revolt broke out in part because of King Gojong's support for reform and modernization. The revolt was also in part, a reaction to Gojong's support for Japanese military advisors. Some sources credit rumors as the spark which ignited violence where many Korean soldiers were worried by the prospect of incorporating Japanese officers in a new army structure.

[Learn more]

Source : Wikipedia







  • There's no registered comment

h·map story

m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