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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 Kyu (?-1011)
Goryeo–Khit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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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 (?-1011)

고려시대 초기인 11세기 초엽에 벌어진 제2차 여요전쟁 때, 맹활약한 문관이자 무장이다. 거란-요나라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이자 명군이었던 성종이 친정했을 때, 소수 정예의 고려군을 이끌고 각지에서 거란군을 격파하며, 포로로 끌려가던 여러 백성을 구출해낸 영웅으로 《고려사》에서 유금필, 척준경, 김경손 등과 함께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큰 전과를 올린 고려의 용장 중 한 명에 해당한다. 제1차 여요전쟁의 주인공 중군사 서희가 거란의 공세를 이겨낼 기틀을 마련했고, 제3차 여요전쟁의 주인공 고려 군주 현종과 상원수 강감찬이 금교역 전투, 귀주대첩으로 길었던 대거란 전쟁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면 도순검사 양규는 그 사이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제2차 여요전쟁의 주인공으로 고려의 멸망을 극적으로 막아낸 구국의 명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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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위키

Yang Kyu (?-1011)

During the reign of King Mokjong, Yang Kyu served as the director of Ministry of Justice. In 1010, during the Liao invasion, Yang was appointed as military inspector of Sŏbukmyŏn. He defeated the Liao army at Hŭnghwa-jin, resisting calls to surrender, and prevented the fortress' fall. The Liao army lifted the siege and left Hŭnghwa-jin. The Liao defeated Kang Cho's 300, 000 man army at T'ongju (modern day Sonchon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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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 Battle of Heunghwajin (Goryeo–Khitan War) (1010) / 흥화진 전투



흥화진 전투

거란 성종이 친정하는 거란군은 보병·기병 도합 400,000명을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칭하고 기존에 알려진 진군로를 따라 내원성(평안북도 의주 검동도) 부근에서 압록강을 건너 강동 6주의 최전선인 흥화진(평안북도 의주시 위원면)을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 흥화진사 정성, 흥화진부사 이수화 등이 이끄는 방어군의 거센 저항으로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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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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