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ju
Yang Kyu (?-1011)
Battle of Heunghwajin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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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 (?-1011)

1010년(현종 원년)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당시 흥화진에서 군사 7백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 군사 1천여 명을 수습했으며, 밤중에 곽주로 잠입하여 잔류한 거란 병사들을 급습하여 모조리 죽인 후 성 안에 있던 남녀 7천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거란군이 철수하게 되자 귀주 방면에서 돌아가는 거란군을 지키고 있다가 기습해 2,000명을 죽이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2,000여명을 구출했다. 다시 이수에서 석령까지 추격하여 거란군 2500명을 베고 포로 1000명을 구출하였다. 이후 여리참에서는 거란군 1,000명을 죽이고 포로가 된 1,000명을 구출했고 다시 거란의 선봉과 애전에서 교전하여 1,000여명을 베었다. 그리하여 고군에서 순월 사이에 7차례나 거란군을 기습해 적 6500명을 죽이고 포로가 된 백성 3만 명을 구출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전리품을 노획했다. 하지만 군사와 화살이 다 떨어져 김숙흥과 함께 거란 성종이 이끄는 주력 부대에 항전하다가 함께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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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Yang Kyu (?-1011)

During the reign of King Mokjong, Yang Kyu served as the director of the Ministry of Justice. In 1010, during the Liao invasion, Yang was appointed as military inspector of Sŏbungmyŏn. He defeated the Liao army at Hŭnghwa-jin, resisting calls to surrender, and prevented the fortress' fall. The Liao army lifted the siege and left Hŭnghwa-jin. The Liao defeated Kang Cho's 300, 000 man army at T'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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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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