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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1886-1947)
여운형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부터 해방 직후 혼란기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민족 지도자이자 정치가이다. 1919년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하고,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외교적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소련, 중국 등에서 국제적인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1929년에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하여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와 계몽 운동에 힘썼다. 광복 후 미군이나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 자주적인 건국 준비와 치안 확보를 위해 서둘러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전국적인 행정 조직을 구축했다. 그러나 좌익과 우익 세력의 대립이 극심해지고 국론이 분열되자, 여운형은 중도 좌파로서 김규식 등 중도 우파 인사들과 손잡고 좌우합작 운동을 주도하여 이념을 초월한 민족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여운형은 좌우 세력 모두를 포용하려는 중도적 노선 때문에 양측의 극단적인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으며, 결국 1947년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하며 통일 국가 수립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Lyuh Woonhyung (1886-1947)
Lyuh Woon-hyung was a Korean politician who argued that Korean independence was essential to world peace, and a reunification activist who struggled for the independent reunification of Korea since its national division in 1945. His pen-name was Mongyang, the Hanja for "dream" and "the sun." He is rare among politicians in modern Korean history in that he is revered in both South and North Korea
[Learn more]Source : Wikipedia
ⓢ Mongyang Memorial Hall / 몽양기념관

몽양기념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기념관은 2011년 11월 27일에 개관하였다.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선생의 삶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선생의 유품과 업적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선생의 애국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자세히보기]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Mongyang Memorial Hall
The Mongyang Lyuh Woonhyung Memorial Hall was opened in November 2011 to correctly inform and commemorate the life of Mr. Mongyang Lyuh Woonhyung (1886 – 1947), a conscientious leader who dedicated all of his life to liberate Koreans and peaceful reunification through his countless sacrifices and mentorship.
[Learn more]Source : YANGPYEONG-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