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AP World Story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5.18-27)
1980년 초,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기대하는 '서울의 봄'을 맞이했지만 신군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계엄 해제와 민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이에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폐쇄하며 김대중, 김영삼 등 주요 정치인들을 불법적으로 체포,연금하는 등의 쿠데타(내란)를 일으켜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5월 18일, 신군부의 조치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광주 전남대학교 앞에서 시작되자, 계엄군은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강경 진압했고. 계엄군의 과잉 폭력 진압이 시민들을 자극하며 시위는 광주 시내 전체로 확산되었다. 시민을 향해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에 맞서 광주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을 하고 시민군을 결성하여 도청 등을 점거하고 항전했지만 신군부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5월 27일 새벽에 무력으로 최종 진압하며 항쟁을 종결시켰다.
Gwangju Uprising (1980.5.18-27)
The Gwangju Uprising, alternatively called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by UNESCO, and also known as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was a popular uprising in the city of Gwangju, South Korea, from May 18 to 27, 1980. Estimates suggest that up to 606 people may have died. During this period, Gwangju citizens took up arms when local Chonnam University students who were demonstrating against the martial law government were fired upon, killed, raped and beaten by government troops.
[Learn more]Source : Wikipedia
ⓢ May 18 Democracy Square / 5.18 민주광장

5·18 민주광장
전남도청 앞부터 시작하여 넓게 뻗어있는 금남로는 광주의 상징이다.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낸 5·18광주민중항쟁의 현장이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은 항쟁의 본부였고 앞에 있는 분수대를 연단으로 각종 집회를 열었으며 항쟁의지를 불태웠었다. 이곳은 ’96년부터 5·18민주광장으로 불려지고 있다. 도청 앞에 위치한 상무관은 당시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희생된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곳이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