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1545-1598)
이순신은 한성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지방에서 군관으로 근무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어 조선 수군을 지휘했는데, 당시 일본군은 이미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바다에서 싸움을 벌였고, 옥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등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특히 1592년의 한산도 대첩에서는 학익진을 사용해 일본 수군을 대파하며 바다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 승리로 일본군은 해상 보급이 막혀 전쟁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정치적 음모로 인해 그는 한때 모함을 받아 투옥되고 지휘권을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후임 장수가 패배한 뒤 다시 복귀해, 극도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명량대첩에서 단 12척의 배로 130여 척의 일본 함대를 무찔렀다. 이후에도 일본군을 끝까지 추격하며 싸웠고,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이순신은 전쟁 내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냉철한 판단력과 희생정신으로 조선을 지켜냈다.
Yi Sunsin (1545-1598)
Admiral Yi Sun-Shin was a Korean naval commander famed for his victories against the Japanese navy during the Imjin war in the Joseon Dynasty, who became an exemplar of conduct for both the Koreans and Japanese. Despite the fact that he had no prior naval training, Admiral Yi was never defeated at sea nor lost a single ship under his command to enemy action, and military historians have placed him on par with Admiral Horatio Nelson as one of the greatest naval commanders i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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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seungdang / 제승당

ⓒ 국가유산청
제승당
통영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산도로 가는 뱃길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이 시작되는 길이다. 멀리 거북등대가 보이면 푸른 물결처럼 마음부터 일렁인다. 충무공 이순신의 위용과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한산대첩의 치열한 역사와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제승당으로 향한다. 푸른 숲과 옥빛 바다가 어우러지는 1km의 해안길은 평화롭고 경건하게 제승당으로 이어진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관광공사
ⓗ Battle of Hansan Island / 한산도 대첩

한산도 대첩 (1592.7)
한산도 대첩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조선 해전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쟁사에서도 중요한 전투로 평가된다. 당시 일본군은 부산을 통해 보급선을 유지하며 내륙의 병력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순신은 일본의 해상 보급로를 끊기 위해 한산도 해역으로 일본 수군을 유인했다. 조선 수군은 판옥선과 거북선을 중심으로 편성되었고, 전투에서는 학익진이라 불리는 전술이 사용되었다.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펼친 형태로, 적을 중앙으로 유도한 뒤 좌우에서 동시에 포격을 퍼붓는 포위 전술이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의 전열선을 가운데로 끌어들인 뒤, 사방에서 함포를 집중적으로 발사해 일본 함대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일본군은 수십 척의 함선을 잃고 큰 피해를 입었으며, 조선 수군은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로 조선은 남해 일대의 제해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일본군은 해상 보급이 끊겨 내륙 작전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후 이순신은 한산도를 근거지로 삼아 수군의 체계를 정비하고, 일본군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한산도 대첩은 명량대첩, 노량해전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으로 꼽히며, 뛰어난 전술적 통찰력과 지휘 능력을 보여준 전투이다. 이 전투를 통해 이순신은 조선의 바다를 지켜냈고, 임진왜란의 전세를 조선에 유리하게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