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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1855-1895)
전봉준은 전라북도 고부(정읍) 출신으로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이 세금을 부당하게 거두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1894년 고부 봉기를 일으켰고 이 봉기는 곧 동학농민운동으로 번지며 전국적인 혁명으로 발전했다. 전봉준은 "보국안민(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과 "제폭구민(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을 외치며 농민군을 이끌었다. 그는 부패한 관리의 처벌, 세금 제도의 개혁, 외세의 축출 등 현실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농민군은 한때 전주성을 점령할 정도로 세력이 컸지만 정부와의 전주화약 체결 이후 일본군이 조선에 개입하면서 전세가 불리해졌다. 결국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했고, 전봉준은 체포되어 1895년에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당했다.
Jeon Bongjun (1855-1895)
In 1894 Jeon Bong Jun and other farmers pleaded with a Local magistrate of Jeolla Province to lift the heavy (and some say illegal) taxes and to return extorted property taken from people accused of unsubstantiated crimes. Jeon Bong Jun and the others were ultimately rejected. In reaction to this rejection he, along with other farmers, revolted and attacked the county office and threatened to punish corrupt officials if they did not cease all corruption.
[Learn more]Source : Wikipedia
ⓢ Ruins of Jeon Bongjun / 전봉준 유적

ⓒ 국가유산청
전봉준 유적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東學運動)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전봉준 선생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철종(哲宗) 6년(1855)에 이 지방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 고종(高宗) 27년(1890)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있었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관광공사
ⓢ Donghak Peasants Revolution Memorial Hall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1894년 반부패·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봉기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수만의 無名동학농민군이 전주감영에서 파견한 관군을 크게 이긴 최초의 전승지로, 향후 고부민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성지로 이를 추모 및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역사상 최초의 농민봉기탑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과 동학농민혁명 관련 각종 교육 및 행사를 담당하는 교육관이 있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관광공사
Donghak Peasants Revolution Memorial Hall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Memorial Hall was opened on May 11, 2004 in Donghak-ro, Deokcheon-myeon (in Jeongeup-si, Jeollabuk-do Province) near the Hwangto-hyeon Battlefield where the Donghak peasants rose up against corrupt public officials.
[Learn more]Source : KOREA TOURISM ORGANIZATION
ⓗ Donghak Peasant Revolution / 동학 농민 운동

동학 농민 운동 (1894-1895)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후기 사회의 불평등과 외세 침략에 맞서 농민들이 일으킨 대규모 민중운동이다. 당시 조선은 탐관오리의 부패, 불평등한 세금 제도, 외세 간섭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여기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 사상이 '사람은 하늘이다(人乃天)'라는 평등사상을 전파하면서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의식을 심어주었다. 1894년, 전라도 고부군의 농민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고부 봉기가 일어났고, 이것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했다. 농민들은 '보국안민(保國安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내걸고, 부패한 관리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목표를 내세웠다. 1차 봉기에서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했고, 청군과 일본군이 동시에 조선에 상륙하자 사태가 심각해졌다. 이에 농민군과 정부는 전주 화약을 맺고 농민군은 해산했다. 하지만 청군 상륙 후 일본군도 철수하지 않고 오히려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며 내정 간섭을 시작하자, 농민군은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2차 봉기)했지만,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며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Donghak Peasant Revolution (1894-1895)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Peasant Revolt of 1894, Gabo Peasant Revolution, and a variety of other names, was an armed rebellion in Korea led by aggravated peasants and followers of the Donghak religion, a panentheistic religion viewed by many rebels as a political ideology. In 1894, the magistrate of Gobu, Jo Byeonggap, had created various bogus laws and forced the peasants to build reservoirs and settle in unowned lands in order to get rich from taxes and fines.
[Learn more]Source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