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최치원
崔致遠 (857-?)



최치원 (857-?)

최치원은 진골 귀족이 아닌 6두품 출신으로 신라의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당나라와 신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l다. 그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하며 탁월한 문장력을 인정받았다. 당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하던 중, 황소를 위시한 농민 반란군이 일어나자 그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저명한 격문인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당나라 전역에 이름을 떨쳤다. 이 시기에 그가 지은 시와 산문들은 당나라에서도 높이 평가받아 '계원필경'이라는 문집으로 묶여 전해지고 있다. 청년 시절을 당나라에서 보낸 뒤 885년에 귀국한 최치원은 당대 신라의 어지러운 정치·사회적 모순을 뼈저리게 느끼고 개혁을 꿈꾸었다. 그는 진성여왕에게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시무십여조'를 올려 유교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개혁안을 제시하며 국정 쇄신을 주도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6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진골 귀족 세력의 기득권 수호, 그리고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부패하고 기울어가던 왕실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의 개혁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정치 현실에 깊은 절망을 느낀 그는 점차 관직을 내려놓고 전국의 명산대찰을 유랑하며 은둔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방관으로 부임해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태산군(현 정읍)과 천령군(현 함양)의 태수로 재직하며 백성들의 삶을 돌보았고, 함양에서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인공림인 상림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가야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신선이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Choe Chiwon (857-?)

Choe Chiwon was born in the Saryang district of the Silla capital of Gyeongju in 857. He was of the so-called "head rank six" class, a hereditary class in Silla's stringent bone rank system affixed to those of mixed aristocratic and commoner birth. As a member of head rank six, Choe was restricted in the level of office he could attain.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map story

m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