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다 쇼인 (1830-1859)
요시다 쇼인은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한론(조선 정벌론)의 뿌리를 만든 인물로 에도 시대 말기, 조슈번(야마구치현)의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병법가이자 사상가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에 위기감을 느낀 그는 일본이 살길은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국력을 키우고, 주변국을 침략해 영토를 확장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쇼카손주쿠'라는 작은 사설 학당을 열어 젊은이들을 가르쳤는데, 이 짧은 기간(약 2년) 동안 배출된 제자들이 훗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고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서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의 주역),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조선총독, 한일강제병합 주도), 야마가타 아리토모 (일본 군국주의의 아버지)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 주장과 활동은 막부의 탄압을 불러, 안세이 대옥(安政の大獄) 시기 체포된 뒤 1859년에 처형되었고, 그는 끝내 유신의 결과를 보지 못한 채 막부 말기의 격동 속에서 생을 마쳤다. 일본에서는 봉건적인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 일본의 기틀을 닦은 혁명가이자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의 원흉으로 평가받는다.
Yoshida Shōin (1830-1859)
Yoshida Shōin, commonly named Torajirō, was one of Japan's most distinguished intellectuals in the closing days of the Tokugawa shogunate. He devoted himself to nurturing many ishin shishi who in turn made major contributions to the Meiji Rest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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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손주쿠(송하촌숙, 松下村塾)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하기에 있는 막부 말기의 작은 사숙(사설 학교)으로 메이지유신을 이끈 인재들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일본의 교육은 신분에 따라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으나, 쇼카손주쿠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하급 무사나 농민 등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다. 다다미가 깔린 작은 공간에서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토론하고 글을 읽고 시국을 논하던 "현장형 공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소로 이곳에서 배운 제자들 중에는 훗날 일본 근대 국가를 설계한 핵심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쇼카손주쿠는 흔히 "메이지유신의 인적 기반이 자란 교실"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이 작은 목조 건물을 "일본 근대화의 여명기(새벽)를 연 성지"로 여기며, 2015년에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Shoin shrine
Shōin Shrine, located in Setagaya, Tokyo, is the Shinto shrine that is dedicated to the deified spirit of Yoshida Shoin, an activist during the Edo era. Shoin was executed by the Shogunate in prison in Tenmacho, Edo in 1859, his body was reburied in Wakabayashi by his followers in 1863. The shrine was erected in 1882, and the current main shrine building was built in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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