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바라
하라 성터
Hara Castle Ruins



하라 성터

1496년에 히가시히젠까지 세력을 넓혔던 당시 26만석의 지주 아리마 타카즈미에 의해 지어졌다. 주변 4킬로미터의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로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아마쿠사마루카라나리로 구성되어 있는 '히구레(황혼) 성'이라고 불리웠다. 아리마가 점점 쇠퇴하게 되어 사가의 류조지에 의해 3번이나 침략을 받으며 시마바라 반도 남부를 유지하지만 그 뒤 하라 성과 히노에 성은 폐성이되었다. 1637년 이 폐성인 하라성에 민란군이 농성을 함으로 시마바라 난의 무대가 되었다. 1938년 일본의 사적문화재로 지정받게 되고 2018년 '나가사키 교회군과 기독교 관련 유산'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Hara Castle

Hara Castle was a Japanese castle in Hizen Province (today in Minamishimabara, Nagasaki). During the Shimabara Rebellion (1637–1638), rebellious peasants were besieged there. As a result of the Shimabara Rebellion in 1637, the Shogunate decided to expel the Portuguese from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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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imabara Rebellion (1637-1638) 시마바라의 난

시마바라의 난 (1637-1638)

시마바라의 난은 에도 시대 초기에 일어난 일본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반란으로 아마쿠사의 난이라고도 한다. 시마바라의 난은 시마바라 반도의 시마바라 번과 가라쓰 번의 주민들이 인민들의 혹사와 과중한 세금 부담, 거기에 더해 번의 기리시탄 박해와 기근에 의한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양 번에서 모두 반발이 일어났다.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를 잇큐군의 총대장으로 내세운 기리시탄 4만여 명의 반란군은 농민뿐 아니라 예속민을 포함한 농업, 어업, 수공업, 상업 등의 거의 모든 산업 종사자들까지 크고 넒게 포함되어 있었으며, 가톨릭 교회 탄압에 대한 반발이라는 종교적 성격과 세금 착취로 야기된 생존권 문제가 모두 포함된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12만 명의 진압군에 의해 4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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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Shimabara Rebellion (1637-1638)

The Shimabara Rebellion was an uprising in what is now Nagasaki Prefecture in southwestern Japan lasting from December 17, 1637, to April 15, 1638, during the Edo period. It largely involved peasants, most of them Catho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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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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