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도산 (1924-1963)
역도산의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으로, 1924년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고, 씨름이 아닌 스모 선수로 변신하여 '역도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뛰어난 기량으로 스모계에서 세키와케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랐으나, 조선인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차별의 벽에 막혀 최고봉인 요코즈나에 오르지 못하고 결국 1950년대 초 스모계를 떠나게 된다.
이후 그는 새로운 세계, 즉 프로레슬링으로 눈을 돌려 미국에서 기술을 익히고 돌아와 1953년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JWA)를 창설하며 일본 프로레슬링의 기틀을 다졌다.
패전 후 심각한 상실감과 열등감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에서 역도산은 구원자와 같은 존재였다.
1950년대 중반 텔레비전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역도산의 경기는 일본 전역을 사로잡았다. 거구의 서양인 레슬러에게 얻어맞고 고통스러워하던 그가 마침내 일어나 가라테 촙이라는 필살기를 날려 외국인 선수를 쓰러뜨릴 때, 일본 국민들은 거리의 TV 앞에 모여 환호하며 대리 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의 한 방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패전국 일본이 서구 열강에 맞서 자존심을 회복하는 상징이었으며, 역도산은 명실공히 '국민적 영웅'이자 전후 부흥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프로레슬링을 통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쌓았고, 부동산 및 사업에도 진출하며 당대 일본의 최고 유명인사로 군림했다.
그러나 1963년 12월, 도쿄의 한 술집에서 야쿠자 단원과 시비가 붙었고,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게 된다. 수술 후 경과는 나쁘지 않은 듯했으나, 복막염 합병증이 발생하였고, 결국 병원에 입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963년 12월 15일,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당시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팬들이 모여들어 그의 짧고 굵었던 생을 애도했다.
역도산은 비록 출신 배경을 평생 숨겨야 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일본 프로레슬링의 창시자이자 전후 일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한 복합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Rikidōzan (1924-1963)
Mitsuhiro Momota, better known as Rikidōzan, was a Korean Japanese professional wrestler known as The Father of Puroresu an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en in professional wrestling history. Initially, he had moved from his native country Korea to Japan to become a sumo wres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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