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성룡 (1542-1607)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겸하여 전시 국정을 총괄하였다. 그는 전쟁 발발 직전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권율을 광주목사에 파격적으로 천거하여 뛰어난 장수들을 미리 발탁하였고, 전쟁 중에는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제를 개혁하고 명나라와의 복잡한 외교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상세히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후세가 다시는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Ryu Seong-ryong (1542-1607)
Ryu Seong-ryong was a scholar-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of Korea. He held many responsibilities including the Chief State Councillor position in 1592. He was a member of the "Eastern faction", and a follower of Yi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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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ngbirok (No.132) / 징비록 (국보 132호)

징비록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저술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유성룡이 조정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낼 때 전란 중의 득실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이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필사본『징비록』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1647)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이것은 숙종 21년(1695) 일본 경도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으며, 1712년에는 조정에서『징비록』의 일본유출을 금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았다. 이 책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Jingbirok
The Jingbirok is a first hand account of the Imjin War written by high ranking Joseon scholar-official Ryu Seong-ryong. Party to high level decision making on the allied Ming-Joseon side and able to access all Joseon records, Ryu Seong-ryong's Jingbirok has become an invaluable source in the study of the conflict, and Chinese-Korean-Japanese relations. In 1969 the Jingbirok was listed as the 132nd of the National Treasures of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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