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광주)
황화강 72열사묘
黄花岗七十二烈士墓



황화강 사건 (1911.4.27)

중국 동맹회가 광저우(廣州)에서 일으킨 반청(反淸) 무장봉기로 72열사 사건, 신해광저우 봉기라고도 한다....이 사건을 총지휘하기 위하여 황흥이 홍콩에서 광저우로 잠입하였다. 이때 어느 여성 회원이 홍콩에서 광저우로 급히 달려와 혁명파의 동지로 여겼던 진경파(陳鏡波)가 사실은 당국의 스파이로서 이 사건이 그에 의해 이미 누설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다시한번 봉기 날짜를 연기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녀의 요청에 대해 황흥은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예정대로 결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 여성회원의 정보는 정확한 정보였음이 나중에 판명되었다. 청나라 정부측은 밀정의 보고에 의해 혁명파의 움직임을 면밀히 탐지하고 있었다. 혁명파의 결사대가 총독관서에 돌입했을때 그곳은 완전히 비어 있었고 수사제독 이준은 대군을 거느리고 그물을 쳐놓고 있었다. 혁명파는 혈로를 뚫고 그곳에서 겨우 탈출했으나 도중에서 방영삼영(防營三營)과 마주쳤다. 사실 이 부대는 혁명파와 내통하여 이준을 제물로 하기 위하여 순덕에서 광저우로 급히 달려오던 중이었다. 그러나 연락이 제대로 안되어 탈출한 혁명파 결사대가 이를 적으로 오인하고 발포하는 바람에 같은패끼리 혈전이 벌어져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청군은 혁명파의 시체 72구를 연고 없는 시체로 취급하여 공동묘지에 장사지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반달(潘達)이라는 사람이 광저우에 황화강(黃花崗)이라는 곳에 묘지로 제공하여 그곳에 합장했는데, 역사적으로 이들을 72열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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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Second Guangzhou Uprising (1911.4.27)

The Second Guangzhou Uprising, known in Chinese as the Yellow Flower Mound Uprising or the Guangzhou Xinhai Uprising, was a failed uprising led by Huang Xing and his fellow revolutionaries against the Qing Dynasty in Guangzhou. It is honored in Guangzhou's Yellow Flower Mound or Huanghuaga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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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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