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정철
정송강사



정철(鄭澈, 1536-1594)

정철은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올라 이조판서, 우의정 등 핵심 요직을 역임하며 조정의 중심 인물로 활약했다. 그러나 동인·서인 간의 당쟁이 격화되면서 정치적 탄핵과 실각을 반복하였고, 결국 유배와 복귀를 오가며 파란 많은 관직 생활을 보냈다. 정철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문학가 중 한 명이다. 대표작 <관동별곡>에서는 금강산과 관동8경의 자연을 유려한 언어와 관념적 사유로 노래했고,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는 임금에 대한 절절한 충정과 그리움을 연군 의식으로 표현해 가사문학의 백미로 남았다. 사림 세력 내에서 서인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동인 세력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동인 세력의 거두였던 정여립의 모반 사건(1589년)이 발생하자, 정철은 정여립을 심문하고 동인 세력을 숙청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서인의 세력은 크게 강화되었다. 정철은 문학사적으로는 국문학의 대가로 추앙받지만, 정치사적으로는 당쟁을 격화시킨 인물로 평가가 엇갈리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Jeong Cheol (1536-1594)

Jeong Cheol was a Korean statesman and poet. He used the pen-names Gyeham and Songgang, and studied under Kim Yunjae at Hwanbyeokdang. He was expelled by the Easter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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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 The Song of the Sceneries of the Gwandong (1580) /관동별곡 (關東別曲)



관동별곡 (關東別曲)

1580년(선조 13) 정철이 지은 가사. 『송강가사』와 『협률대성』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45세 되는 해 정월에 강원도관찰사의 직함을 받고 원주에 부임하여, 3월에 내금강·외금강·해금강과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는 가운데 뛰어난 경치와 그에 따른 감흥을 표현한 작품이다. 내용을 시상의 전개에 따라 나누면 4단으로 나뉜다. 1단에서는 향리에 은거하고 있다가 임금의 부름을 받고 관찰사에 제수(除授)되어 강원도 원주로 부임하는 과정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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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Shrine of Jeong Songgang / 정송강사 (鄭松江祠)



정송강사 (鄭松江祠)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시인인 송강정철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이다. 원래 송강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에 있었는데 1665년(현종 6)에 송시열(宋時烈)이 묘소를 지금의 자리로 정하고 후손 정포가 이장하여 사우를 창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였으나 규모가 작고 퇴락하여 1979년부터 1981년에 걸쳐 전면 중건하고 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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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Shrine of Jeong Songgang

Shrine of Jeong Song-gang in Jincheon is the local monument No. 9 as the shrine that a tablet of Songgang Jeongcheol was set up. Jeongcheol was the first vice-premier as the politician in the Joseon Dynasty. He was a secret royal inspector in Hamgyeong-do after becoming Jipyeong as he won the first place in state examinations (Jinsa and Byeolsimnugwan) in the 1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yeongjong as a writer with Kim Inhu. And he received special favors of Sagadokseo with Yulg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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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Jincheo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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