셴양(함양)
마외병변
양귀비의 죽음 (756.7.15)


마외병변 (756)

756년, 안녹산의 반란군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위협하자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와 측근들을 데리고 사천 지역으로 황급히 피난길에 올랐다.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군사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고, 이들은 이 모든 국가적 재앙의 원인이 양귀비와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이자 권신이었던 양국충의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믿었다. 피난 행렬이 마외역에 이르렀을 때, 군사들은 행군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분노한 군사들은 먼저 재상 양국충을 살해했다. 그러나 분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군사들을 이끌던 대장군 진현례는 현종에게 "양국충의 뿌리인 양귀비가 살아있는 한 군심을 수습할 수 없다"며 그녀의 처형을 강력히 요구했다. 70대의 노황제가 된 현종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여인을 살리기 위해 애원하고 설득했으나, 이미 통제력을 잃은 군사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결국 현종의 명을 받은 내시 고력사가 양귀비를 인근 불당의 배나무에 목을 매어 죽게 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세미인 양귀비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차가운 흙바닥에서 생을 마감했고, 현종은 그녀의 시신을 남겨둔 채 눈물로 피난길을 재촉해야 했다. 이 사건은 당나라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Yang Guifei's Death (756)

Emperor Xuanzong then sent Gao Lishi to ask General Chen Xuanli for his advice. Chen's reply was to urge the Emperor to put Consort Yang to death. Initially the Emperor refused, but after Wei E and Gao Lishi spoke in agreement with Chen, the Emperor eventually agreed. He had Gao take Consort Yang to a Buddhist shrine and allow her a forced suicide, considered a more dignified death than execution. When Consort Yang's body was shown to Chen and the other imperial guard generals, the soldiers dispersed and prepared to continue the journey. Consort Yang was buried at Mawei, without a coffin, but with masses of fragrance wrapped in purple blan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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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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