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노지의 변 (1582.6.21)
1582년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천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반대 세력을 거의 정리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뛰어난 가신이었으나, 평소 노부나가에게서 모욕적인 대우를 받거나 중요한 임무에서 소외되는 등 잦은 수모를 겪으며 불만을 품고 있었다. 미츠히데는 당시 주군인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아 서쪽의 주고쿠 지방에서 모리 데루모토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가던 중 갑자기 목표를 바꿔 혼노지를 급습했다. 혼노지에 머물던 노부나가는 경호 병력이 거의 없던 상태였고, 미쓰히데는 약 13,000명 병력을 이끌고 기습해 사찰을 완전 포위하였다. 노부나가는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이었고, 결국 불길에 휩싸인 혼노지에서 자결(하여 생을 마감했다. 향년 49세였다. 미쓰히데가 왜 배신을 감행했는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후세 다양한 설이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정설이라 부를 만한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처럼 동기가 불확실한 점, 그리고 기록의 일부가 뒤바뀌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일본 사학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노부나가의 죽음은 일본 통일의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곧바로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곧이어 그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미쓰히데를 격파하면서 세력 정리가 되었으며 일본 전국시대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통일국가로 가는 길목에서의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노부나가가 완성했을지 모를 일본 통일'은 사라지고, 히데요시와 이후 막부 체제가 중심이 된다.
Honnō-ji Incident (1582.6.21)
The Honnō-ji incident refers to the forced suicide on June 21, 1582, of Japanese daimyō Oda Nobunaga at the hands of his samurai general Akechi Mitsuhide. This occurred in Honnō-ji, a temple in Kyoto, ending Nobunaga's quest to consolidate centralized power in Japan under his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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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1534-1582)
1534년 오와리국(현재의 아이치현)의 다이묘 가문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파격적인 복장과 행동으로 오와리의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오케하자마 전투(1560)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이끄는 대군을 소수 병력으로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면서 전국에 이름을 떨쳤고, 천하 통일의 첫발을 내디뎠다. 1568년 교토로 진격하여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을 옹립하면서 정치적 권력을 장악했고 가시노 전투(1575)에서 조총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하여 당대 최강이던 기마대를 격파하며 전술의 혁명을 일으켰다. 농민과 병사를 분리하여 상비군을 육성하고 군사력을 전문화하고 막부의 권위를 능가했던 불교 세력(엔랴쿠지)을 철저히 진압하여 종교 세력이 정치에 개입하는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1582년, 노부나가는 자신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의 혼노지의 변기습 공격으로 교토의 혼노지에서 자결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국시대의 판도를 다시 뒤흔들었다.
Oda Nobunaga (1534-1582)
Oda Nobunaga was a powerful daimyo of Japan in the late 16th century who attempted to unify Japan during the late Sengoku period, and successfully gained control over most of Honshu. Nobunaga is regarded as one of three unifiers of Japan along with his retainers Toyotomi Hideyoshi and Tokugawa Ieya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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