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1875.4.18-1965.7.19)
이승만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미국 유학을 거쳐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독립을 알리는 데 힘썼고,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임정 내부 갈등과 독단적 리더십 문제로 탄핵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해방 이후에는 반공주의를 바탕으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반도 남쪽에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이 되어 국가 체제 구축, 행정·사법 제도 정비, 농지개혁 등 초기 국가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해 정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반공 노선을 강조했고, 휴전협정에 반대하며 북한 포로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하는 등 국제 사회와 긴장 관계를 만들기도 했지만, 전쟁 이후 재건과 국가 체제 강화 작업을 지속했다. 그러나 집권이 장기화되면서 이승만 정권은 민주주의 원칙을 점점 훼손해갔고, 특히 1952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강행하기 위해 군·경을 동원한 '부산정치파동', 1954년 장기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 등은 강력한 독재적 통치의 상징으로 남았다. 1960년에는 자유당 정권이 부정선거를 저지르면서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4·19 혁명으로 대학생과 시민들이 대규모로 봉기하자 결국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1965년 하와이에서 사망했으나, 사후에는 그의 공과를 둘러싼 평가가 첨예하게 갈라졌고, 한편으로는 건국과 반공 체제 구축의 공로를 강조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 집권을 위한 독재와 인권 탄압, 부정선거 등 민주주의를 훼손한 측면을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Syngman Rhee (1875.4.18-1965.7.19)
Syngman Rhee was a South Korean politician, the first and the last Head of State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President of South Korea from 1948 to 1960. His three-term presidency of South Korea was strongly affected by Cold War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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