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장춘 (1898-1959)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인물로 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어렵고 복잡한 배경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일제강점기 중 일본에서 농업·식물유전학을 전공한 뒤 농림성 농사시험장 등에서 육종 연구를 시작했고 1936년에는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방 후인 1950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했고, 이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연구소장, 원예시험장장 등의 직책을 맡아 한국의 채소·원예 종자 자립과 육종 인력 양성에 힘썼다. 그는 국내에서 채소·과수의 신품종 개발, 우량 종자 보급, 종자 자급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그의 연구는 단순히 학술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전후 폐허 속에서 식량과 채소 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농촌에 우량 종자 보급과 자급 체계 구축이라는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그는 한국에서 원예육종학과 종묘기술자 양성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의 제자들과 후속 세대는 오늘날까지 한국 농업 연구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Woo Jangchoon
Woo Jang-choon was a Korean-Japanese agricultural scientist and botanist famous for breeding plants. Woo was born and raised in Japan, overcoming poverty and discrimination in Imperial Japan to become a prominent researcher and teacher. When Korea was freed of Japanese rule in 1945, Woo left his family in Japan, and traveled to Korea to lead the country's efforts in botany and agriculture.
[Learn more]출처 : Wikipedia
ⓢ Woo Jangchoon Memorial Hall / 우장춘 기념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