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요호 사건 (1875.9.20)
1875년 9월, 일본 군함 운요호가 고의로 조선의 영해인 강화도 앞바다에 접근하여 무단으로 측량하고 정박을 시도하자, 조선군의 초지진 포대가 이에 맞서 경고 포격을 가했다. 이에 운요호는 무단 침입을 정당방위의 구실로 삼아 포격을 가해 영종진을 공격하고 민가에 불을 지르며 군민을 살상했으며, 조선의 군함과 군수 물자를 약탈한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을 구실로 일본은 "강제로 포격당했다"고 주장하며 조선에게 문책과 개항을 요구했고, 결국 이듬해 조선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을 체결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Ganghwa Island incident (1875.9.20)
The Ganghwa Island incident or the Japanese Battle of Ganghwa was a purposely armed clash between the Joseon dynasty of Korea and Japan which occurred in the vicinity of Ganghwa Island on September 20, 1875. It was a form of gunboat diplomacy and this incident occurred intentionally for the purpose of opening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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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pan–Korea Treaty of 1876 / 강화도조약

강화도조약 (1876.2.27)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일본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운요호 사건 이후 일본의 무력 압박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조약이다.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에서 이 조약을 맺었으며, 공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조선이 일본과 동등한 자주국임을 인정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과 경제적 침투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었다. 또한 부산 외에 원산과 인천(제물포) 등 두 항구를 추가로 개항하고, 일본 상인이 자유롭게 통상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일본인에게 조선 법이 아닌 자국 법으로 재판받는 치외법권(영사재판권)을 부여했다. 더불어 일본은 조선 해안을 자유롭게 측량할 수 있는 권리까지 얻어 군사적으로도 우위를 차지했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500여 년간 유지해 온 쇄국정책을 끝내고 국제 무대에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으며, 이후 서양 여러 나라와도 비슷한 형태의 불평등 조약을 잇달아 체결하게 되었다.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근대 세계 체제에 편입되는 첫걸음이자,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시작점이 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Japan–Korea Treaty of 1876 (1876.2.27)
The Japan–Korea Treaty of 1876, also known as the Japan-Korea Treaty of Amity in Japanese or Treaty of Ganghwa Island in Korean, was made between representatives of the Empire of Japan and the Korean Kingdom of Joseon in 1876. Negotiations were concluded on February 26,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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