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문익점
文益漸 (1329-1398)



문익점 (1329-1398)

1363년(공민왕 12년), 문익점은 고려의 사신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목화솜을 이용하여 따뜻하고 실용적인 옷을 만드는 것을 보고 목화 재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당시 고려는 백성들이 삼베나 짐승 가죽, 누에고치에서 얻은 비단 등으로 옷을 지어 입었기 때문에 겨울철 추위에 취약했다. 그는 귀국길에 목화 씨앗을 붓대 속에 숨겨 고려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귀국 후, 그는 고향인 경상남도 산청에서 목화를 심었으나, 재배 기술 부족과 기후 문제로 처음에는 모두 실패했으나 그의 장인인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전념하여, 시행착오 끝에 씨앗을 덮는 방법 등 재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목화 재배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정천익이 실을 뽑는 기구(물레)와 옷감을 짜는 기구(직조기) 등을 개발하여 무명(면직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따뜻하고 저렴한 무명 옷이 보급되면서 백성들은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의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주요 교역 물품이자 중요한 경제 자원이 되었다. 문익점은 한반도에 목화를 전파하여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인 실질적인 공로자로 평가받으며, 그의 공적을 기리는 사당과 유적지가 경상남도 산청에 남아 있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최초로 한국에 면포를 만드는 목화를 들여왔다고 전해지나, 최근 백제 시대 면직물이 발견되어 삼국시대에도 목화 재배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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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Mun Ikjeom (1329-1398)

Mun Ikjeom was born in Gangseong village in 1329. His father was Moon Sook-sun , who had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but did not work for the government. Ik-chom started working for the government as a historical recorder in 1360. In 1363, he went to Yuan China as an ambassador for cultural exchange. On the way back to Korea he put cottonseed in his writing brush cap to bring it secretly in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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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목면시배유지

사적 제108호. 고려 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이 유적은 1363년(공민왕 12)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고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몰래 붓통에 숨겨가지고 들여와 그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하였던 곳이다. 또, 부근의 마을은 문익점의 출생지이기도 한데, 이 마을은 목화재배의 유래를 간직해오면서 지금도 배양마을로 불리고 있다. 배양마을에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한길가에는 오른편으로 나지막한 돌담을 둘러싼 100여평의 밭이 있고 밭의 오른쪽에는 기와지붕을 올린 비각이 있으며, 그 안에 ‘삼우당문선생면화시배지’라고 제목을 붙인 사적비가 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처음으로 문익점에 의해서 들여온 목화가 번식에 성공하였던 옛터이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옛터에 밭을 일구어 해마다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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