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공민왕
恭愍王 (1330-1374)



공민왕 (恭愍王, 1330-1374)

공민왕은 고려의 제31대 국왕이다. 즉위 초반에는 무신 정권의 세력 기반을 혁파하고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국을 선언하였으며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정책을 펼쳤으나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개혁의지를 상실하였다. 신돈 등을 등용하여 권문세족과 부패 관료와 외척을 정리하고 신진사대부를 중용하는 등의 개혁정책을 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남색과 술, 향락에 탐닉하던 중 1374년 홍륜, 최만생에 의하여 시해당했다. 영명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특히 그림과 서예에 능하였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홉 살에 불과한 아들 모니노(우왕)가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모니노의 생모인 반야가 신돈의 노비라는 점 때문에 후에 정통성 논란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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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King Gongmin of Goryeo (1330-1374)

King Gongmin of Goryeo ruled Goryeo Korea from 1351 to 1374. He was the son second of King Chungsuk. In addition to his various Korean names, he bore the Mongolian name Bayan Temür. Starting with King Chungnyeol, prospective rulers of Korea married Mongolian princesses and were customarily sent to the Yuan Court, in effect, as hostages. As per this custom, King Gongmin spent many years in the Yuan court, being sent there in 1341, before ascending the Korean throne. He married a Mongolian princess who became Queen No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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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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