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촉한의 명장 관우의 묘로 이창 인근의 땅양 (당양)에 있으며 전체가 붉은 색 벽돌과 황색 기와로 장식되어있다. 명대에 이르러 관릉은 황제의 대우를 받게 되면서 청색 기와에서 황색 기와로 바뀌에 되었다. 천하 무예의 성인을 일컫는 '천하무성'의 편액이 걸려있다. 이곳은 관우의 몸이 묻혀있으며 머리는 뤄양의 관림에 묻혀있다.
ⓟ Guan Yu (?-220) / 관우
관우 (?-220)
관우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군으로 유비, 장비와 함께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이자, 중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무장 중 한 명이다. 그는 사후에 전설적인 영웅을 넘어 관성대군이라는 신의 반열에 올랐으며, 오늘날에도 의리와 재물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관우는 유비가 처음 군사를 일으킬 때부터 평생을 함께한 충신으로 신장이 9척(약 2m)에 달하고 대추처럼 붉은 얼굴과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가졌으며, 82근에 달하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전장을 누볐다고 전해진다. 조조조차 그의 용맹과 인품에 반해 천금과 벼슬로 회유하려 했으나, 관우는 '조조의 은혜는 갚되, 유비와의 의리는 결코 저버릴 수 없다'며 조조 밑에서 세운 공을 뒤로하고 홀로 유비를 찾아 떠난 '오관참육장'의 일화로 의리의 화신이 되었다. 그의 무용은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지키며 절정에 달했다. 조조의 명장 금우를 격파하고 번성을 포위하며 천하를 뒤흔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동맹이었던 손권의 배신과 부하들의 이탈로 인해 맥성에서 사로잡혀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죽음은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촉한 멸망의 서막이 되기도 했다. 사후 관우는 민간 신앙과 결합하며 독특한 위상을 갖게 되었는데 역대 황제들은 그에게 '성인'의 칭호를 부여했고, 민간에서는 그가 평소 장부를 꼼꼼히 적고 신의를 지켰다는 점에 착안하여 '재물의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오늘날 중국 전역과 해외 화교 사회 어디를 가도 관우의 동상을 모신 '관제묘'를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시대를 초월하여 정의와 신용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Guan Yu (?-220)
Guan Yu was a general serving under the warlord Liu Bei in the late Eastern Han dynasty. H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events that led to the end of the dynasty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state of Shu Han – founded by Liu Bei –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fter Liu Bei gained control of Yi Province in 214, Guan Yu remained in Jing Province to govern and defend the area for about seven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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