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관동 대학살
간토 대학살 (1923)



간동 대학살 (1923)

관동대학살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발생한 집단 학살 사건이다. 9월 1일 대지진으로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일본 내무성은 각 경찰서에 조선인의 방화·폭동 등을 경계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확산되면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를 하고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빠르게 퍼졌다. 불안과 적대감이 확산되자 일본의 군·경과 자경단 등이 조선인을 색출하고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지역 곳곳에서 발생했다. 학살은 9월 2일부터 6일 무렵까지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희생된 조선인의 정확한 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국가기록원은 최소 6천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 독립신문은 김영학의 조사에 근거해 6,661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도했다. 관동대학살은 자연재해 자체의 피해를 넘어, 유언비어와 민족적 편견이 결합해 무고한 조선인들이 대규모로 희생된 비극으로 일본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Kanto Massacre (1923)

The Kanto Massacre was a mass murder in the Kantō region committed in the aftermath of the 1923 Great Kanto earthquake. With the explicit and implicit approval of parts of the Japanese government, the Japanese military, police, and vigilantes murdered an estimated 6,000 people: mainly ethnic Koreans, but also Chinese and Japanese people mistaken to be Korean, and Japanese communists, socialists, and anarch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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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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