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산군
燕山君 (1476-1506)



연산군 (1476-1506)

연산군은 조선의 제10대 왕이다. 조선 성종의 장자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루던 훈구파와도 절연하여, 사림파를 적대세력으로 훈구파를 비호감세력으로 만들어 독단정치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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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sangun (1476-1506)

Yeonsan-gun or Prince Yeonsan, born Yi Yung or Lee Yoong, was the 10th king of Korea's Joseon Dynasty. He was the eldest son of Seongjong by his second wife, Lady Yoon. He is often considered the worst tyrant of the Joseon Dynasty, and perhaps all of Korean history, notorious for launching two bloody purges of the seonbi scholar elite. He also seized a thousand women from the provinces to serve as palace entertainers, and appropriated the Seonggyungwan study hall as a personal pleasure ground. Overthrown, Yeonsan-gun did not receive a temple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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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화 (甲子士禍)

갑자사화는 1504년(연산군 10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 문제로 인하여 일어난 사화이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복위를 추진하면서 성종때 폐비를 찬성한 훈구 원로세력이 대부분 숙청당했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은 중종 반정 직후 대부분 복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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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 (戊午士禍)

무오사화는 1498년(연산군 4년) 음력 7월 유자광과 연산군이 김일손 등의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한 사화이다. 사건이 일어난 1498년이 무오년이기에 무오사화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사초가 원인이 되었다하여 ‘史’(사)자를 넣어 한자로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도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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